2016년 5월 22일 일요일

동주 [구효서]~

동주 [구효서]'민족저항시인' 윤동주가 아닌, '시인' 윤동주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 구효서가 윤동주 시인의 죽음과 그의 유고를 모티브로 한 작품, [동주]를 내놓았다. 제목만 들어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윤동주일 듯싶지만, 윤동주는 모티브만 제공할 뿐 직접적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27세의 재일한국인 겐타로와 아이누족 요코, 이 두 인물이다.소설은 겐타로가 입수한 요코의 기록,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 기록을 손에 넣게 되는 겐타로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긴장감을 높여간다. 요코의 열다섯 살 적 기록과 그녀가 중년이 돼 자신의 모족어인 홋카이도(北海道) 아이누어로 쓴 회상기는 윤동주의 죽음과 유고를 둘러싼 비밀을 드러내고, 겐타로의 추적은 이 내용과 함께 요코의 비밀도 함께 드러낸다. 마치 ‘양파껍질 벗기기’ 식 구성의 전형을 보여준다.작가는 이 소설에서 ‘윤동주는 왜 죽었을까’에 집중하는데, 여기서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시인’으로서의 죽음이다. 무엇이 그를 죽게 했을까? “윤동주의 언어는 특정한 가치와 이념, 국가와 민족에 치우치지 않았어요. 그는 조선어를 선택한 게 아니라 모어인 조선어로 시를 썼을 뿐이죠. 그것은 시인의 언어였을 뿐 국가와 민족어로서의 조선어가 아니었어요.” 라고 말하는 요코의 진술에서 우리는 작가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에게서 시인의 언어를 빼앗는 순간 시인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시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런 윤동주의 언어를 다시 ‘사이의 세계’로 돌려보내 그를 되살려내고자 한다.“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저항시인이 된 윤동주그것이 그를 죽게 한 이유다!”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구효서의 신작 장편소설동주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두 가지윤동주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교토의 15세 소녀,그리고 윤동주의 유고(遺稿) 미스터리!민족저항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윤동주는 우리에게 새겨졌다. ‘시인’ 앞에 붙은 ‘민족’과 ‘저항’이라는 관형사의 연속이 명예롭고 비장하고 애절하여 무겁다. 그 무거움이 이 소설을 쓰게 했는지 모른다. 무거워서, 열사와 영웅의 묘소에 잠들게 된 시인의 꿈이 혹 날마다 거친 것은 아닐지……. 투구와도 같은 저 관형사를 조심스레 벗기고 내가 반했던 모습 그대로의 윤동주를 시인의 묘역에 이장하고 싶었다.한 소녀의 오래된 기억, 그리고 시인의 유고(遺稿) 추적에 얽힌 미스터리!- 유고 추적과 소녀의 기록을 통해 새롭게 밝혀지는 윤동주의 삶과 문학작가는 소설의 제목을 ‘동주’라 적었다. 윤동주의 동주다. 윤동주가 주인공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윤동주는 전면에도 화자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서술자는 올해 스물일곱 살인 재일한국인 3세 김경식과 요코라는 여인이다. 두 사람은 각각 글을 남긴다. 남긴 글 속에 윤동주는 후경(後景)으로만 등장할 뿐이다.작가는 일찌감치 시인 윤동주에게 반했기 때문에 ‘동주’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작가가 반한 것은 윤동주의 시도 아니고 항일 정신도 아닌, 윤동주의 얼굴, 눈빛, 미소 등 사진에 박힌 그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소설에서도 ‘윤동주는 왜 죽었을까’가 궁금하다. 그에 대한 답으로서 역사적 사실은 이미 웬만큼 밝혀져 있다. 경찰 조사 기록이 공개되면서 더 분명해졌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피검되어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윤동주의 죽음을 두고 생체 실험에 의한 희생이라는 논란이 있어왔다. 체액 대용으로 쓰일 생리 식염수 확보를 위해 규슈 대학교 의료팀이 조선인 재소자들에게 바닷물을 지속적으로 주사했다는 설은 정황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윤동주도 그 주사를 맞았다.그러나 그것은 ‘자연인’ 윤동주의 생물학적 죽음에 대한 추론(追論)일 뿐 ‘시인’ 윤동주의 죽음에 대한 논담(論談)에는 미치지 못한다. 심장이 멈춤으로서 생의 종말을 고하는 게 자연인이라면, 시인은 무엇이 멈추어 존재의 종말을 맞이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를 죽게 했을까. ‘민족저항시인’으로서의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시인’ 윤동주는 이미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순간 죽음을 맞이했다. 사상을 검증한다는 구실로 윤동주에게 자신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도록 강압하는 그 순간에 말이다.민족저항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윤동주는 우리에게 새겨졌다. ‘시인’ 앞에 붙은 ‘민족’과 ‘저항’이라는 관형사의 연속이 명예롭고 비장하고 애절하여 무겁다. 그 무거움이 이 소설을 쓰게 했는지 모른다. 무거워서, 열사와 영웅의 묘소에 잠들게 된 시인의 꿈이 혹 날마다 거친 것은 아닐지……. 투구와도 같은 저 관형사를 조심스레 벗기고 내가 반했던 모습 그대로의 윤동주를 시인의 묘역에 이장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집필 의도는 분명하다. 또한 소설에서 드러난, 작가가 말하는 윤동주의 죽음의 이유도 분명하다. 윤동주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민족저항이 시인이 되어 있는 이유. 그것이 윤동주를 죽게 한 이유다!2011년, 민족저항시인 윤동주의 재해석[동주]는 작가의 기존 작품들과는 또 다른 차별성을 보이는 작품이다. 사회와 권력의 횡포를 고발하는 작품을 즐겨 써온 작가는 최근 일상의 소소함과 눈물겨운 삶의 풍경을 그리는 작품을 써왔는데, 이번에는 이런 경향을 다시 한 번 벗어나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윤동주의 죽음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족저항시인 윤동주가 아닌, 진정한 ‘시인 윤동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윤동주의 죽음 이면에 또 다른 이유를 ‘시인 윤동주’라는 관점에서 찾고 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서 민족저항시인 윤동주가 아닌, 시인 윤동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또한 [동주]는 순수한 ‘시인’ 윤동주의 의미를 언어에서 찾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은 언어, 말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윤동주는 간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간도(間島)는 ‘사이의 섬’이라는 뜻이다. 당시 간도는 여러 나라의 영향력이 충돌하던 곳으로 조선인만 살던 곳도, 조선어만 쓰던 곳도 아니었다. 윤동주가 태어나고 자란 간도의 특성상 여러 ‘세계’의 ‘사이’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숙명이었다. 그는 늘 불안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사이의 세계’ 간도에 적을 두고 평양과 서울, 일본을 오가며 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특정한 가치와 이념, 국가와 민족공동체에 치우치지 않았다. 조선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모어인 조선어로 시를 썼을 뿐이다. 사상을 검증한다는 구실로 자기 시의 번역을 강요당하는 순간, 시인에게서 시인의 언어를 빼앗는 순간 시인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고 시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런 윤동주의 언어를 다시 ‘사이의 세계’로 돌려보내 그를 되살려냈다.[줄거리]유고(遺稿) 추적과 한 소녀의 기록을 통해 새롭게 밝혀지는 윤동주의 삶과 문학,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 윤동주와 함께 기숙하며 그가 연행되는 모습까지 지켜본, 윤동주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당시 15세였던 교토의 소녀 요코. 그리고 윤동주의 유고 미스터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재일교포 3세인 ‘나’ 김경식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교토에서 윤동주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소녀 요코의 기록과 그녀가 중년이 되어 이타츠 푸리 카라는 이름으로 윤동주를 기억하고 있던 기록을 ‘나’가 점점 알아가면서 윤동주의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주의 고종사촌과 문익환, 한명준이라는 친구와의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절친했던 친구 한명준이 반민투에 의해 희생되는 이야기를 비롯해 ‘나’가 윤동주의 유고 원본을 찾아다니며 알게 된 사실, 그리고 언어의 소멸 위기에 대한 내용 등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윤동주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쳐나가며 윤동주가 썼던 언어를 통해 ‘민족저항시인‘이 아닌 ’시인‘ 윤동주를 다시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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